목수잡담

해적선장 윌리엄 키드....1

어니스트 해마선소 2007. 12. 18. 01:05

윌리엄 키드는 1645년경  그리녹에서 태어났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

부친은 작지만 발전하기 시작하는 이 항구에서 켈빈파 목사로 일했다고 한다.

 

키드는 오랜기간 성실한 뱃사람으로 승선생활을 했지만, 곧바로  영국 사략선(私掠船)의 선장이되어 

아메리카 근해를 항해하는 일을하게 된다.

그는 뉴욕에 근사한 집을 가지고 있었고, 아내와 자식들도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여러척의 무역선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경제적으로도 꽤 넉넉했다고 볼수있다.

1665년 메사츄세스 총독 벨몬트 백작은  뉴잉글랜드 연안을 배회하는 해적을 제압하기위한 조치를 강구하라는

본국으로부터의 훈령을 받는다.

이 어려운 역할을 수행하기위해 선택된 사람이 키드 선장이었다.

그는 국왕 윌리엄3세로부터,  로드 아일랜드의 토마스 튜, 뉴욕의 토마스 웨이크, 및 윌리엄 메이즈,  존 아일랜드, 등등

"종류 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해적"들을  나포하라는 위임장을 받는다.

위임장은  '친애하는 벗, 윌리엄 키드'  라고 적혀있었다.

이러한 계획은 처음부터 음흉한  조작의 냄새가 난다.

왜냐하면, 키드 선장과 승조원에게는  일에 대한 보수가 지불되는것이 아닌, 이미 악평(惡評)이 나있는 "획득물이 없으면

지불금도 없다"라는 방식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원정을 지원하는것도 아니었다.

배와 모든 장비, 식량은 관계자들이 모여서 비용을 분담하고, 귀항하고나면 각자 자기몫의 전리품을  나누어 받는 방식이었다.

해군본부 제1위원 벨몬트 백작, 대법관  소머스 공, 소해대신 롬니 공, 슐즈베리 공, 기타  중직의 귀족들이  이 사업에

출자를 했고, 키드 선장은 전액의 1/5이라는 큰 액수를 분담했다. 

.....계속

 

(海賊 の世界史에서 번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