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잡담

해적선장 윌리엄 키드...2

어니스트 해마선소 2007. 12. 21. 00:59

1696년  9월, 키드가 지휘하는 '어드벤쳐 겔리'호는 155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뉴욕을 출범했다.

그러나 그 이후 오랜동안 그들의 소식은 끊어지고 말았다.

오히려 그들에관한 좋지않은 소문들만 널리 퍼져가기 시작했다.

해적선을 나포하는대신 그들 스스로가 해적선이 되어버렸고, 인도양에서 해적질을 하고 다닌다는

풍문이 잉글랜드나 메사츄세스에 퍼지기 시작했다.

벨몬트는 키드가 북아메리카로 돌아오면 즉각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699년 6월의 어느날, 키드는 보스톤에 귀항했다.

그는 공동사업자였던 벨몬트에의해 즉각 투옥되었고, 해적재판을 받기위해 쇠고랑을 찬 채 영국 군함

'어드바이스'호에 태워져 잉글랜드로 호송되었다.

 

 

키드는 '어드벤쳐 겔리'로 뉴욕을 출항한후 과일과 와인을 싣기위해 마데일라로 직행한후, 다시  물울

보급받기위해 케이프 벨데 제도에 기항했다. 희망봉을 돌아 홍해에 도착한것은 아메리카를 출항한지  일년정도

지났을때였다.

9월 20일, 키드는 무어인이 탄 배를 나포하고 후추와 커피 몇 푸대와 거울을 빼았았다.

카루왈 연안을 항해해봤지만 전혀 획득물이 없었고,  승조원들은 빈털털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느날, 키드는 포수장(砲手長)인 윌리엄 무어와 말다툼을하게 되었는데, 격분한 키드가 철테를 두른

양동이로 무어의 머리를 심하게 내려쳤다.

다음날 포수장은 사망했다.

훗날 키드가 교수형에 처해진것도 해적행위보다는 포수장 살해죄가 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키드는 주어진 명령대로 그럭저럭 실행해온 나날들이었는데, 무어를 살해하는사건이 발생한 이후

본격적인 해적질로 들어가게된다.

 

11월 27일, 키드 일당은 '메이든'호를 만나 나포하고 약탈했다.

키드 그 자신이 해적을 체포하는것보다,  스스로 해적이 되어버렸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소형선을 몇척 나포한후, 그는 가장 멋진 약탈품과 만나게된다.

'퀘다 머천터'호 였다.

이 배는 벵갈에서 스라트로 항해하고있던 5백톤 정도의 배로서, 마라발 곶에서 키드일당에 나포되었다.

배에는 비단, 모슬린, 사탕, 철, 초석, 금, 등등의 귀중품이 실려있었다.

키드 일당은 각자 충분한 배당금을 나누어 가질 정도의 전리품을 얻었으므로, 해적의 기지로 유명한

마다카스칼로 향했다.

그들은 모든 약탈품을 '어드벤쳐'호로부터 육지로 옮겨 각자 분배했다.

키드가 4할을 가졌고, 나머지는  150인의 승조원들이  나누어 가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