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잡담

영화 '변호인'과 요트...

어니스트 해마선소 2014. 2. 9. 14:50

가족과 함께 영화 변호인을 봤다.

 

내 직업이 보트빌더니까 이 영화와 관련된 요트 이야기만 하자.

 

영화는 첫 시작부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입니다'라고 친절한 자막이 붙는다.

 

송변이 요트국가대표선수가 되어 88올림픽에 나가보겠다며 열심히 타던 요트는

(영화에서 요트세일링 장면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고, 몇 초 정도로 순간적 영상으로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만,,, 영화 속 요트는 국제(International) 470급 경기용 요트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가 맞다.(노통이 요트에 한창 빠져있었을 때,

국내에는 470급 요트가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다)

 

실화 속의 노통의 요트. 소위 '호화요트를 즐기는 노통' 의 사진을 보자.

 

 

 

 

 

위 사진속의 요트는 일본의 내셔널 클라스(National class, 국내 경기용 요트)  경기용

Y-15급 딩기이다.

 

Y-15급 딩기는 1958년 일본의 요코야마 아키라(橫山 晃)가 설계한 딩기이다.

요코야마의 이니셜 Y자를 딴 15피트 딩기 Y-15.

(요코야마 아키라의 아들이 요코야마 이치로(橫山一郞)인데,

그는 일본의 아메리카즈컵(America's Cup) 도전정인

니폰첼린지호의 수석 요트디자이너였다) 

전장 4.6미터/ 폭 1.73미터 / 선체중량 120kg의 2인승 딩기이다.

차인형 선형이라 안전성이 우수하고, 합판으로 일반인이 쉽게 자작할수 있고,

frp로 양산도 가능하게 설계되었는데

요트입문자의 교육용 및 일본의 국내 경기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아래 도면은 내가 갖고있는 요코야마 설계도면 카탈로그에 수록된 Y-15 Mark3 ) 

 

노통은 일본의 이노우에씨에게 요트세일링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이야 국내에서도 요트선수의 체계적인 훈련법과 커리큘럼이 잘 짜여져 있는 편이지만,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전인 요트교육은 일본이 가장 앞서 있었다.)

 

노통의 '호화요트 사건' 허위보도 고소와 관련하여 법원이 내린 판결문을 보면..

1982년 부산의 김ㅇㅇ씨를 도와 세일제작공장을 차리는데 도움을 주었고,

부산요트클럽 회원들과 국제 스나이프급 딩기 대여섯척을 제작한것은 사실이지만,

8인승의 크루저 한 척을 건조했다는 보도(아마도 Sea Wife호를 의혹의 대상으로 잡은 듯 함)에 대해서는

노통이 금전적 지원이나 관여를 하지는 않았으므로 사실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나는 대학 1학년생이던 1984년의 겨울방학 거의 대부분을 (판결문에 등장하는)

부산 토곡동의 김ㅇㅇ씨의 FRP조선소(세일제작 공장은 바로 인근에 있었다)에서 스나이프급 딩기 1척을

요트부 선배들과 같이 제작하며 보냈다.

조선소에 있는 스나이프 양산형 FRP몰드를 이용하여,

FRP스킨에 12밀리 일반합판을 심재로 사용한(학생이라 돈이 부족하여) 합판샌드위치 딩기였고,

마스트는 필라멘트 와인딩(fillament winding)기법으로 만들었었다(이것 역시,

돈이 부족하여 카본섬유 대신 일반 로빙스트랜드(roving strand)섬유를 사용 함 ㅠㅠ).

그때 만든 딩기로 우리 선배들은 1~2년간 전국요트대회 스나이프급을 주름잡았었지만,

심재로 사용한 합판이 물을 머금기 시작하면서 배가 무거워져 선속이 느려지고,

세일과 마스트는 노후화되고,,게다가 카라쯔, 오쿠무라 등의 일본제 명품 스나이프급 요트를 타고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밀려 국산 스나이프급 요트가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변호인 영화에서처럼 만약 노통이 88올림픽에 국가대표요트선수로 출전하려고 했다면,,

아마추어 요트맨으로선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당시의 올림픽 요트종목에서 1~2인승으로 출전할 수 있는 종목은

국제 Finn급, 국제 470급, 국제 Flying Dutchman급, 국제 Tornado급 등인데,,

아마추어 요트맨이 어찌 해 볼수 있는 수준이 아닌 요트들 뿐이다

(고도의 세일링 테크닉과 팀웍을 필요로 하거나 혹은 초인적인 체력이 필요한 클래스들이다).

그냥 열정은 열정으로 끝났을 것이다.

 

영화 변호인의 흥행열풍에 대해 냉소적인 모 일간지에서

'요트를 즐기는 장면까지 담았더라면 영화적 재미를 살리는 데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비꼬아

사설에 썼다는데..

나야말로 아쉽다.

 

송변이 날렵하게 하이크 아웃(hike out, 몸을 보트 밖으로 뻗쳐 배의 균형을 잡는것)을 하고,

한 가닥의 바람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잡기위해 진지하게 딩기를 튜닝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더라면..

 

영화속 세일링 장면은 너무나 아쉽게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