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따바리 돌감나무 접목

어니스트 해마선소 2020. 6. 5. 15:46

작년 늦가을

동네 산책을 하다가 어느 문중 무덤가에서 감나무를 발견했다.

큰 소나무 아래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감나무였는데

아래 둥치는 허벅지만큼 굵었다.

그런데 그 열매가...어릴적 보던 따바리 돌감이 아닌가.

따바리란 시골의 여인네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나를 때 

안정적으로 중심도 잡을 겸

머리가 짓눌리는 고통도 줄일 겸 사용하던 짚으로 만든 도너츠 형상의 

또아리를 말한다.

 

우리 동네에는 따바리 감이 몇 그루 있었는데

원형에 가까운 시각형으로 생겼고, 좀 납작했다.

우리집 마당의 따바리 감은 명품이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 쯤이면 거의 재떨이 크기만큼 되었고

홍시로 달콤하게 숙성된 맛은 일품이었다.

반면에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따바리 감은 집에서 키우는 따바리 감의

축소형이었다. 직경 3~4센티 정도로 동글납작하니 예쁘고 홍시맛도 좋았다.

아마도 민가의 따바리감 씨앗이 새들에 의해 산으로 퍼지면서 돌감으로 자란거 같다.

 

우리들은 야생의 따바리 돌감을 주로 은어나 장어를 잡을 때 식물독으로 사용했다.

여름방학이면 친구들과 산으로 가서 야생 따바리감을 둥우리에 가득 채워 오고,

냇가에서 자라는 으아리덩클과 뿌리, 때죽나무 열매(고향말로는 깨독)를 섞어서 절구통에 짓찧어 

3가지 성분의 식물독을 만들었는데 효과가 정말 좋았다.

(식물독의 좋은 점은 인체에 해가 없고, 물고기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난다)

여름방학이면 동네 초등학교 친구들의 일상복은 하얀 난닝구였는데

돌감을 절구통에서 찧느라 감즙이 튀어 우리들의 여름 난닝구는 

온통 거무스럼한 감물 얼룩으로 가득했다.

 

옛날엔 산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야생감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산이 짙어지면서 야생감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야생 따바리 돌감이라도 보존해 보자고 올해 1월 말 쯤에 동네의 따바리 돌감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이 나무는 세력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튼실한 1년생 접수를 장만하는것도 쉽지 않았다.

가지 중에서 그나마 상태가 나은 놈 두어개를 채취하여 땅에 묻어 봄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삼월 삼짓날

2년생 고욤나무와 대봉감 대목을 뚝 자르고 따바리 돌감 가지를 접붙이기 했다.

따바리 돌감의 눈이 워낙 부실하여 저게 싹으로 자라날거라는 믿음도 생기지 않았고

올해 유난히 냉해도 심하여 접수가 얼어 죽을까 걱정하며 봄을 보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나무가 본격적으로 움을 틔우기 시작하는데

접붙이기를 한지 2달 만에야 드디어 접수의 눈에 녹색이 돌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대봉감 묘목 하나를 포기해 가면서 살려낸 소중한 따바리 돌감이다.

 

3~4년 후의 늦가을 풍경은 따바리 돌감이 있어 아름다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