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잡담

김영희 누나의 세계일주 요트 오이라스(Euras)호....

어니스트 해마선소 2009. 8. 16. 15:43

 

 

 *20대초반과 크루저요트.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속을 초월한 요트부 선배가 한분 계셨는데

그분이 어느날 24피트 슬루프 리그(sloop rig) 크루저요트(선명이 skipper호 )한척을

학교의 요트부 하버(harbour)에 맡겨 놓으셨다.

 

"오늘부터 크루저요트 세일링을 하고싶은 부원들은 언제든 마음껏 이용하라.

배 보관 관리에만 항상 신경 좀 써 주고...!"

 

돛만 올리면 언제든 출항할수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키퍼호가 출항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히려 계류중인 스키퍼호는 ...3, 4학년 고참 요트부원들의 회의장소나  회식 장소로서 더 많이 활용되었다.

dog house안의 편안한 밀폐감과, berth에 기대앉아 요트 선체에서 나직하게 울려오는 찰랑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술잔 기울이고 담소하기에 좋았다.

우리들이 크루저에서 추구할 매력이란 그것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피끓는 20대 초반의 나이란,, 크루저라고 세일링 가능하고, 딩기라고 세일링이 불가능한 기상(氣象)은 없다고 믿는 나이이다.

선체의 크기한계와 풍력등급은 세일링 기술과 체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수 있다고 믿는 나이이기에

백파(白波)로 허옇게 뒤집어진 바다를 이왕이면 경쾌한 딩기로 달리는것이 더욱 스릴이 있다고

생각하는것이 20대 초반이다.

그러니 밍밍한 크루저 세일링이 우리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스키퍼호는 학교 축제때나 세일링에

잠시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1~2년후...

어느날 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흘러들어온 크루저 한척과 만났다.

그리고 그 요트를 본 후 부터, 나는 내가 미래에 가지고싶은 요트가 어떤것인지를 정해버렸다.

 

* 오이라스(Euras)호!

 

쉬라우드(shroud)에 배기-링클(baggy- wrinkle: 돛이 쉬라우드에 쓸려 닳는것을 방지하기위해 부착하는 털 뭉치)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당당한 크루저 한척이 어느날 갑자기 하버에 들어와 있었다.

마치 설산(雪山)에서 내려와 내앞에 선 한마리의 야크(yak)처럼 초월적이고 강인하며,

오대양의 온갖 파도와 바람과 비밀들은 모두 저 배기-링클의 털실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을

전설속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의 배 같았다. 

 

요강단지를 연상케하는 현측의 깊은 텀블홈(tumblehome)은...황천의 바다에서 'Lying a Hull '조선법으로

피항을 해야하는 경우가 생길때 박 바가지에 기름 발라놓은듯,, 아무리 거친 파도라도 선체에 충격을 주지는

못할것 같았다. 

 

풍만한 카누-스턴(canoe-stern)의 더블엔더(double-ender) 선미는 북유럽의 콜린 아처(Colin Archer)스타일을 물려받아,

입을 꽉 다문 단단한 2매패(二枚貝) 조개를 연상시키며,

바다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온갖종류의 재앙에대해 단 한치의 빈틈을 보여주지 않을 태세다.

튼튼하고 굵어보이는 마스트헤드 리그(mast headed rig)의 스탠딩리깅(standing rigging)은 설사 남대양(southern ocean)의

쇄파(碎波)에 말려 피치 폴(pitch-pole)을 당한다 하더라도 마스트를 잃지 않을것 같았다.

 

세상에...세상에나...

 

저렇게도 강하고 굳건한 인상의...

오직 멀고 거친 대양에서의 항해와 생존을위해 모든 촛점이 맞춰 설계된 크루저도 있구나...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양족(大洋族),즉  블루워터(blue water)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크루저이자

거칠고 황량한  대양을 끝없이 떠도는 바다 집시들과 바바리안,플라잉 더치맨의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극소수 사람들만의 크루져였다.(학창시절 나의 일기장 필명은 FD(flying dutchman)였었다. 나는 그것을

나의 숙명이라 생각했었다 )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무선연락 받으면 항해하다 말고 곧바로 직장이나 집으로 후다닥 잽싸게

돌아가야 할것같은 사람들의.. 세련된 넥타이맨들의 크루저요트와는 포쓰면에서 완전히 달랐다. 

 

 요트부장이 말했다.

"저 크루저가 오이라스호다. 60년대에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던 김영희씨가 그곳의 독일인 의사와 결혼했는데,  

지금 세계일주 항해 중 한국에 들른거다,. 

한국을 떠날때까지  학교 하버에 정박할 예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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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에서 김영희씨 부부와 대면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우리들은 '영희누나'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작고 가냘프고 수수한, 그러나 강한,, 우리 한국의 누나들 이미지를 연상하면 된다.

어느날, 남편에게 미더덕 된장국을 끓여줄거라고 수줍은듯 말하며 하버의 바위밑에서

미더덕을 따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누나! 이쪽 미더덕보다는 저~쪽에서 따이소. 저쪽이 훨씬 깨끗합니다.!" 

 

우리들도 늘 바쁜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영희누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것이 늘 아쉽다.

지금쯤 어떻게 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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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딩기세일링 훈련 끝난후,영희누나의 오이라스호에서 찍은 사진인데,,

누런 중절모를 쓴 본인으로 인해 오이라스호가 완전히 난민선(?)으로 변해버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 -;; .

사진은 오이라스호의 미즌(mizzen)마스트를 배경으로 나왔기때문에 오이라스호의 당당한 위용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