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중의 합숙훈련이나 아니면 세일링 이론교육을 받을때
선배들이 어쩌다가 아주 ~~가끔씩,짧게,,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말씀이 있었다.
(꼭 기수별로 한 분씩은 이런 말을 하더라. 모든 선배가 이런말을 하지는 않는다)
"세일링중 최상의 집중상태란 말야...배와 내가 한몸이 된 상태야!"
흠..나는 그렇게 들었고(如是我聞) ^^...
선배들의 이런 바람처럼 흘리는 말은 일종의 외전(外典)에 속하는 말씀들이다.
요트부원들간에 자주 회자되는 주제도 아니며, 외전에 집착할만큼 요트란것이 공부나 노가다꺼리가
단순하지도 않은 분야다.
바다에 나가면 핸들링 훈련, 뭍에오르면 튜닝이론,경기규칙및 판례, 전략전술,..등등의 이론과,
보트의 수리,관리 작업등의 노동,목제 마스트가 부러지는경우 마스트 제작까지....수년을 매달려도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 신비의 외전은 언제나 잠시 한쪽 귀로 왔다가 그냥 사라지는 존재였다.
..................
2학년때 전국 대학생 요트경기때였다.
이미 2학년 말 정도 되면 그동안 훈련하고 공부한것이 일취월장해 가는 시기다.
수없이 많은 모의시합과 세일링 훈련을 해서, 어떤 기상, 해황에서도 능숙하게 요트를 조종할수있으며,
선단(fleet)이 마크 주변에 뒤섞이는 대혼란중에도 자신의 항로우선권 관계및 경기규칙에 익숙해져 있어서,
밀어부칠건 밀어부치고, 물러날건 물러난다.
경기의 참맛을 제대로 아는 시기다.
나는 그때 엔터프라이즈 딩기를 몰고 경기에 나갔다.
6경기중 5경기를 1위로 들어왔고,마지막 경기를 뛰는데,, 이미 우승이 확정되어 심리적으로 느긋했다.
(전국 대학요트선수권 경기 같은건 ,
우리 요트부에선 동네시합정도로 보기땜에 우승해봐야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잘 놀고 왔냐?? 정도지..)
하여튼 그 마지막 레이스에서 나는 선배들이 말해온 외전의 체험을 하게 된다.
바람은 초속 5~6미터 정도,
약간 짧은파(波)가 일고있는 choppy한 해상상태에서...
우린 마지막 레이스도 1위로 달리고 있었고,풍하마크를 돌고난후 최종 6 leg의 풍상코스를 범주하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휘어서 불고있다는걸 알았다.(때론 바람이 휘어들어온다는걸 일반인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요트맨들은 셋팅된 자신의 세일과 그에따른 침로변화를 보고 금방 알아차린다.).
운좋게도.. 지금의 코스를 유지하면 휘어들어오는 바람을 유리하게 이용할수있는 코스였다.
택킹한번 안해도 피니시 라인까지 그대로 갈수있을 정도라 예측했다.
우리배는 2위 그룹과 상당한 격차를 벌려놓고 있었기때문에
크루로부터 선단의 움직임이나 동향에대한 보고조차 받을 필요가 없었다.
jib sheet를 셋팅해놓고 jib sail의 텔테일(telltale)만 쳐다보며 범주했다.
그렇게 텔테일에 집중 또 집중하고, 선수방향으로 거의 일정패턴으로 다가오는 파도 하나하나마다
러더를 미세하게 움직여 능파해 나갔는데,..얼마를 지났을까?..
내 정신이 여느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걸 느꼈다.
내가 지금 스키퍼로서 배를 조종하고있다는 의식도 없었고,
한손엔 틸러익스텐션, 다른손엔 메인쉬트를 잡고있다는것조차 의식되지 않았다.
그래도 배는 다가오는 파도 하나하나마다 대응하여 완벽하게 heaving을 했으며
텔테일의 미세한 흐름 변화에도 배는 저절로 최적의 코스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 라는 존재가 없어진 것인지?
나 라는 존재가 해체되면서 선체(船體)로 스며들어가서 내 오감의 영역이 선체로까지
확산되어버린 느낌......
그래서 내가 배인지, 배가 나인지, 경계조차 없어진 상태에 들어갔다.
얼마나 정신이 맑고 고요하고 완벽하게 깨어있었는지, 내가 집중하여 쳐다보고있던 jib sail의
텔테일만이 마치 흐르는 냇물의 싱싱한 파래처럼 바람에 꼬리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생생하게 살아 흐르는 텔테일을 나는 그후론 보지 못했다)
그리고 텔테일의 아주 미묘한 형상변화나 다가오는 파도에대하여 배를 조종한다는 자각이 없음에도
배는 저절로 그에맞게 반응하고 있었다.
배를 조종해야겠다는 의식없이도 가장 완벽하게 조종된 신비한 체험이었다.
(짧은글로 적어놓고보니 글이 느낌을 따를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느낌'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그날 오도송(悟道頌)을 지으라면 짓겠더라... 농담이다^^)
결승선을 통과했을때 우린 2위 그룹과는 엄청난 거리를 벌려놓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게 어떤 경지에서 세일링 한건데..ㅋㅋ
경기가 끝나고 입항했는데
마침 국가대표들과같이 합숙훈련을 끝낸, 나보다 2년 선배형이 우리를 보러 와있었다.
(그는 우리들의 우상이자 세일링기술및 이론의 Master였다.)
나는 오늘 있었던 특이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너도 그걸 느껴보았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형에게서 외전의 계보가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알았다.
내가 후배들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외전을 흘렸는지 어쨌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배와 한몸이....' 어쩌고하는 현역후배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참 세월이 많이도 흘러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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