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경부터 우리나라엔 470 클라스 요트들이 본격 보급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의 요트경기 종목에 470이 포함되어있기때문에
각 대학의 요트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었는데, 이때 우리학교엔 3척의
요트가 배급되었다( 470, Enterprise, Laser가 각 1척씩)
470이 도착하기전부터 우린 470에대한 기초적인 이론들을 선배들로부터 교육받고 있었고,
우리보다 470 보급과 세일링 기술이 훨씬 앞서있었던 일본의 국가대표 기쿠치 조(組)의
세일링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보며 470에대한 이미지쌓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한(漢) 무제가 꿈에서도 갖고싶어했다는 천마(天馬)가 서역에서 도착하길 기다리듯....
그러나 실제로 470을 대면하고보니,,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배안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거미줄같은 복잡한 컨트롤 라인들과 피팅들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고,.......
마스트를 세우고 범장을 마친 470을 보니 넓은 세일면적에 BOOM이 얼마나 낮은지,
과연 택킹을할때 크루가 낮은붐의 아래를 통과해서 반대택으로 빠져나갈려면 예삿일이
아니겠다는 절망을 할 지경이었다.(이때까지 우리는 스나이프의 높은 붐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
그러니 기쿠치 팀이 구사하는 환상적인 택킹동작은 ,,저게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 머릿속에 그려 보시라
기쿠치(크루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조가 풍상코스에서 풀로 트레피징(trapezing)을 하면서
쾌속질주를 하고있다가 순간적으로 택킹을 한다.
그때의 크루의 동작은 마치 진자가 좌우로 흔들리듯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다.
그 유연한 몸의 이동 흐름속에서도 jib sheet 조절, 트레피즈 해제와 체결, 낮은 붐 아랫공간의 통과가
거의 2초이내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된다는것은 경악 그 자체였다.
(스피니커 세일을 올리고 내릴때의 크루와 스키퍼의 환상적인 동작일치는 말할것도 없다)
나는 470맨이 아니었기때문에, 4학년이 되어서야 470을 가끔씩 타보게 되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요트선수들이 기쿠치 팀 수준의 세일링 테크닉을 구사할수있는걸 구경하기까진
상당한 햇수가 걸렸다.
위 사진에서 보듯, 470은 크루가 발을 거널(gunwale)에 딛고, 몸은 트레피즈 라인에 의지한체
배밖으로 100푸로 빼내어 배의 중심을 잡는다.
거의 활주형에 가깝게 설계된 선형, 넓은 세일면적, 트레피즈에의한 heeling극복능력등 , 고성능
요트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있기때문에,,,470이전의 요트들에의해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갖고있던
풍상코스에대한 개념들(풍상코스는 느리고 힘든 노가다 코스다.)을 싸그리 쓸어버리고,
얼마든지 풍상코스도 쾌속범주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대략,..우리나라의 요트문화는 (1985년을 전후하여), 470 보급 이전과 470 보급이후시대로 나누어진다고 말할수 있다.
470보급 이전의 시대는 요트자작과 요트세일링을 더불어 즐기던 낭만의 요트시대라고 할수있겠고,..
470보급이후는 아주 치열한 경기 우선의 시대라고 할수 있겠다(470의 보급으로 one-design 즉,
동일한 조건에서의 경쟁의 틀속으로 본격 편입되었고, 허(虛)라는,, 불완전하지만 낭만적 요소는
찿아볼수 없게 되었다)
(위 사진: 80년대 낭만주의 시대의 대학요트부 보유 선단 : 스나이프, ok딩기,파이어볼,레이저,엔터프라이저,470,등등
클라스의 다양성이 살아있는 모습)
one-design요트가 우리나라 요트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요트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제일먼저, 요트자작 문화가 사라졌다.
요트 한척이 너무나 절실해서 부원들의 용돈을 모으고, 학교의 써클지원자금을 보태고,
조선소를 운영하는 요트계의 아는 형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어렵게 어렵게 배를 건조하거나
아니면 보트빌딩을 공부해서 직접 자작하는 방식으로 요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one-design의 시대에는 자작한 요트 자체가 인정이 안되는 세상이다.
각 클라스의 국제 위원회에서 라이센스를 인정한 회사에서 생산된 요트만이 경기에 출전할수있다.
정말 강력한 권력이 탄생한것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고싶어??그럼 라이센스를 부여받은 제품을 사!!
거기엔 전세계의 어떤국가도, 각국의 요트협회도, 개인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우린 470을 시작으로 정부와 협회에서 지급하는 '관급품'으로 무장하는,, 군바리체제로
전환을 하게된다.(도올의 표현대로 하자면,스스로 무장해야했던 칼잡이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one-design 중앙집권의 군바리체제가 각 대학의 아마추어 요트계에 미친 영향은 심각했다.
(그건 뭐, 원디자인 체제만이 원인이 된건 아니고, 80년대 초부터 88꿈나무와 국가대표 상비군등의
엘리트육성 체제를 갖추면서 사실상 아마추어 요트맨들은 이미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요트 자작이라는 달콤한 낭만은 꿈도 꿀수없게 되었고(내가 1학년 겨울방학에 요트부선배들과 함께 부산 토곡동의
김한준兄의 킴세일 조선소에서
몰드 빌려서 frp제 스나이프(선명: Robin호)를 자작한것이 마지막 자작정이 된다)
과거시험 준비하는 유생처럼 오직 원 디자인의 체제순응에만 피터지게 몰입해야 했다.
원 디자인체제란,동일한 조건에서의 경기이므로, 경쟁의 조건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리고 요트의 품질이 거의 균일하므로, 자신에게 적합하고 외부상황에맞게 언제든 재현가능한 튜닝 데이타를 얻을수도 있다.
외부 변수가 엄청나게 다양한 요트경기에서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기위한 요트의 최적화와 핸들링 기술을 연마하는것만으로도 시간은 늘 부족하다.
자신만의 마스트 레이크(mast rake) 측정에관한 데이타를 확보해두는건 기본적인 일이 되었고,
요트 튜닝과 세일트림, 스탠딩 & 런닝리깅에관한 이론도 예전세대에비해 엄청 정교해졌다.
해상에서 우리들이 요트를 타고있는게 더 이상 뱃놀이가 아니었으며(뭐,전통적으로 뱃놀이를위해
바다로 나가는건 일년중 학교축제기간 뿐이었지만,,),
'세일링 머신'으로 거듭나기위한 훈련과정의 연속일 뿐이었고, 전쟁과같은 나날들이었다.
(강의 시간이 한시간이 빈다고 요트를 범장하여 바다로 나간적이 여러번 있을 정도다.^^
범장하고 해장하는 시간을 빼고나면 15분~20분 남짓의 세일링 시간을 갖는다.
그 15분이 아까워서,,배운것을 직접 실습해보고싶은 조바심에 그 미친짓(?)을 해댔으며
몸에묻은 바닷물도 다 닦아내지 못하고 얼굴에 소금 허옇게 핀체 다음 강의실로 허겁지겁 뛰어가곤 했다.)
그래서 내게는 요트를 타고있는 사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놀이로서 요트를 탈때나 사진찍을
여유가 생기지,ㅋㅋ)
................................
470은 그렇게 우리들 곁으로와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천마를 능숙하게 몰수있는 머신을 만드는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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