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닐때,제일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었으니..
들에 나가서 소 풀먹이는것이었다.
그 날도 냇가 제방 위에 누워서 하늘이나 쳐다보며 빈둥대고 있었는데
우리 소가 바로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한번 타 보기로 했다.
소를 타는 요령은 그 전부터 아버지께 들은게 있었다.
별거없고..그냥 앞다리와 뒷다리의 중간부분, 즉 허리에만 앉지 않으면 된다고 하셨다.
왜냐?..허리가 쳐진 소는 제값을 못받는다고 -_-::
그래서 소를 탈때는 앞다리의 윗등에 타야한다고 했다.
아주 떨리는 도전이었지만, 소 등에 조심스레 앉았다.
소도, 이게 뭔일이여~???하는 어리둥절한 모습이었고, 나는 나대로..이놈이 로데오에 출전한
소처럼 날뛰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몇분동안 소와 나는 꼼짝도 못하고 서로의 적응기를 거쳐야했다. ....
다음날부터 나는 자청해서 소 풀먹이러 다니는 효자(?)가 되었다.
외양간에서 소를 몰고나오자마자 냉큼 소 등을타고 들로 나가고,
풀을 다 먹이고나면 소 등을타고 집으로 오는 즐거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앞다리의 윗등은 그리 편한자리는 아니다. 소가 낮은 도랑의 풀을 먹느라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는경우 그대로 소의 목줄기를 미끄럼타고 내려가서 뿔에 내 허리춤이 걸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점점 소의 걸음걸이 리듬에 익숙해지면서 소 등을 타고 책을읽을수 있을정도로까지 갔고,
소 등에 탈때도 처음엔 언덕이나 담장,등의 디딤발이 필요했지만, 나중에는 소 등을 한손으로 짚고
막바로 훌쩍뛰어 올라타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엔터프라이즈 딩기란게 처음 소를 탈때와 비슷했다.
요트를 제법 탔다는 사람도 엔터프라이저를 몰아보라고하면 처음엔 어리둥절해 한다.
대부분의 요트는 메인세일을 조종하는 메인쉬트가 콕피트 블록(cockpit block)을통해 당기고 풀고하며 조종하는데비해,,
엔터프라이즈 딩기는 (붐의 끝단에 달린) 붐엔드블록(boom end block)과 트랜섬 윗면에있는 트레블러 블록을통해 main sheet를 조종하게 된다.
그러한 차이로인해 택킹(tacking)이나 자이빙(jybing)을 할때.. 스키퍼는 뒤를 향하여 몸을 돌리면서
러더와 메인쉬트를 교환하는 동작을 해야한다.(대부분의 요트는 위의 동작을할때 앞쪽을 보면서
등뒤로 러더 익스텐션과 메인쉬트를 교환하는 동작을 한다).
택킹과 자이빙의 동작이 기존과 정반대의 ,, 이질감을 극복하는데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특히 강풍에서 자이빙을할때 , 앞이 아닌 뒤를 보면서 동작을 취한다는것은,,흔들리는 트럭 화물칸에서
손잡이 없이 눈을 감은체로 중심을 잡고 서있는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이질감도 세월이 해결해 준다.
오히려 엔터프라이즈의 메인 컨트롤 시스템에 익숙해지고나면 , 이게 가장 편한 시스템이라고 여겨질정도다.
러더익스텐션과 메인쉬트가 거의 같은 방향으로 배열되어 스키퍼에게로 오기때문에, 한손만으로
러더와 메인쉬트를 동시에 조종할수도있으므로 다른 한손은 자유롭다, 또한 콕피트 블록이 없으므로
콕피트의 가운데 부분은 사람이 앉아도 아무런 걸리적거릴 로프가 없는 편안한 공간이다.
즉 엔터프라이즈는 레저용으로도 손색이없는 범용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것이다.
두루두루 오지랍 넓은 포용성과 범용성의 덕분인지, 엔터프라이즈 딩기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졌고 규모가 큰 클라스라고 봐야할것이다.
(위 사진:미풍(微風)에서 롤택킹(roll tacking)을 하는경우, 넓은 선체폭과 높이로인해 스키퍼는 소 등에 올라탄것과같은 고도감(?)을 느낀다.
이런 불편함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형이나 선체외관을 보면, 그야말로 클래식 그 자체다.
더블차인(double chine)에 , 거의 직립형에 가까운 선수(plumb bow), 선저는 상당한 rocker가 있고,
거기다 빌지 부근에는 rubbing strip까지 한줄씩 떠~억 종통하고 있다.
...현존하는 요트 클라스 중에서 이만큼 고전적인 외형을 갖춘게 없다.
현대적인 스피드 중심의 딩기라면 모두 거부했을 구조적, 설계적 요소들을 자랑스레 장착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그래서 전혀 경기용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범장을 모두 제거하고 선체만 물위에 띄워놓고 본다면 저건 놀이용의 rowing boat로 보일것이다.
(목조정으로 만들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엔트프라이즈를 설계한 Jack Holt가 활동할 당시에 영국에 활주형 딩기가 없었냐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잭 홀트보다 이전 세대 디자이너인 Uffa Fox가 활주형 딩기의 신세계를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길이 4~5미터의 짧은 배를 몰고자하는 사람에게 기존의 조선공학적 이론인 hull speed이론(선체는 그 수선장의 제곱근 x 1.34가
그 선체가 낼수있는 최고속력이다)은 믿자니 갑갑하고 무시하자니 대안은 없는 저주와 같았는데,
Uffa Fox는 활주형 딩기(International 14 class가 대표적)를 설계하고 실험함으로써 저주를 부수고 딩기의 새로운 세상을 이미 보여주었던 시대다.
물론 잭 홀트도 인터내셔널 포틴을 설계한적도 있지만, 그는 어쨌거나 같은 영국인인 우파 팍스보다 젊은 세대이면서도 가장 클래식한 딩기로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
(위: Uffa Fox의 '인터내셔널 포틴 클라스 딩기' Avenger호 도면(1928년): 본격적인 활주형 딩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위 사진: 현대의 international 14 클라스)
자~ 그럼 활주를 전혀 배제하고 설계한것처럼 보이는 엔터프라이저가 활주를하는경우,
그 배를 타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성난 황소를타고 돌진하는 기분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전혀 활주를 고려하지않은 선형에서 오는 저항들이 엄청나서 , 그 저항들의 파워는 스키퍼에게
짜릿한 전율을 안겨준다.
강풍의 풍하범주가 아닌한 왠만해선 활주를 하지도 않지만, 일단 활주를 하게되면
선저의 rubbing strip은 그 역할이 lifting strip으로 바뀌면서 선체의 부상(浮上)에
일조를 하고,배 바깥쪽으로 부채살처럼 뻗어나가는 스프레이(물보라)의 장관이란 ..
아예 하얀장벽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 정도다........
늘 느긋하고 편안한 친구이면서, 가끔씩 광란하는 재미도 안겨주는 소같은 딩기..
엔터프라이즈가 좋다.
(위 사진: 엔터프라이즈의 풍하 활주시 스프레이의 범위를 보라.어마어마한 물보라를 퍼뜨리며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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